2009년 06월 09일
2-3. 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일단 제가 첫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논문은 전 방에 두고 오고, 인터넷은 되는데 책상은 없고
뭐 하여간 할게 글쓰는거 밖에 없군요. 논문 끝나면 추가시험 준비 빼고는 이거 쓰느라 바쁠지도요.
겸사 pops라는거 신청 해 봤습니다. 여러분이 pops 클릭을 해주시면 제가 한국에서 도서 구매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해봤습니다.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두고 보는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일단은 반론 여지가 없을 주제로 다른 글 올려야 할 압박을 슬그머니 피해보겠습니다.
철학은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철학을 딱 듣는 순간 보통 나타나는 표정은 수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와 상당히 비슷하다. 그만큼 철학은 난해하고, 복잡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있어서 철학은 단순히 복잡함 이상의 것을 전달해 준다. 그 이유는 철학이 연역적 과정을 통해서 결론을 내리는 반면, 과학은 귀납적 방법을 통해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학과 상반되는 논리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철학은 과학이 무시하는 여러 부분을 간과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과학중에서도 대표적으로 귀납론을 사용하는 분야는 생물학 분야이다. 생물학의 진화론은 창조론과 항상 충돌하고, 생물학적 결과는 새로운 귀납론에 의해서 뒤집히기 일쑤이다. (반면 같은 귀납적 방법으로 결론을 내리는 물리학의 경우 연역적인 판단을 귀납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철학 자체에 대한 헛점의 노출보다는 그 방법론 자체를 배워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철학은 과학에게 과학이 간과한 부분을 언제나 잊지 않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보완책인 셈이다.
이 할아범이 양자역학 이해 못한건, 뉴턴의 고전역학이 틀린것처럼 보인다는 착각과 같다.
물리학이 절대 연역론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이다.
대표적으로 과학이 잘못 파악한 분야는 바로 살충제나 농약이다. 생산성 증대를 위해서 농약을 사용하였으나, 이제는 몸에 해로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약에 의존하지 않으면 작물을 망치기 마련이고, 그 악순환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인간이 단기간에 경험하기 힘든 일들에 대해서 귀납론을 사용하면 안되는 것을 생물학은 계속 간과하고 있다. 광우병은 아직 발병 과정조차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과학적으로 통제 가능하다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MSG에 대해서는 고작 분자생물학적 영향만을 알고 있을 뿐, 그 모든 영향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특히 광우병의 경우에는 정치논리가 합쳐져서 지금까지 알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가정하여도 좋다고 말하는 미국식 귀납론에 지배당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물리에서는 이미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참이거나 거짓이거나 혹은 모른다라는 상태(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럼에도 모르는 것은 참이거나 거짓일테고 참이라고 가정을 한 상태에서 풀어 나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철학적 접근이 없으면 찾아내기 힘든 내용들(이에 대한 논쟁은 하이젠베르그 저서 '부분과 전체'에 잘 나온다)이다.
양자는 어찌되었건 간에 양자이다. 인간이 인간의 관념으로 그렇게 받아들일 뿐.
물리를 이해하는 방법. 이것도 철학적이지 않은가?
마찮가지로 MSG의 경우에도 신경 자극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 특히 장기간 노출되었을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생물학자들이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물론 저거 하나에 일생을 바칠 정도로 생물 분야가 할일이 없는 분야는 아니긴 하지만) 생물학에서 분자생물학적 방법을 최고로 친다면, 자극적 TV를 많이 보는 아이들에게 간질 증상이 발생하는 등은 TV를 탓하기 전에 아이들이 먹은 식품부터 분석해야 생물학자들 스스로가 모순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게 과학이라고 하는 인간이나 창조과학이 과학이라는 인간이나.
이렇듯 과학은 많은 부분을 가정하거나 간과하고 경험론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간과된 부분에 대한 의구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연역론적 접근인 철학이다.(의구심 없는 과학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과학을 살리고 있는 것 자체가 철학인 셈이다.) "전체는 모든 부분의 합보다 크다."(All is more than sum of its parts) 이 말은 과학자가 절대 잊어서는 안될 말이며, 철학이라는 학문은 그 자체가 아닌 과학에 의구심을 던져주고, 그 자리에 멈추지 않도록 계속적인 원동력을 제공하는 연료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뭐 하여간 할게 글쓰는거 밖에 없군요. 논문 끝나면 추가시험 준비 빼고는 이거 쓰느라 바쁠지도요.
겸사 pops라는거 신청 해 봤습니다. 여러분이 pops 클릭을 해주시면 제가 한국에서 도서 구매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해봤습니다.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두고 보는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일단은 반론 여지가 없을 주제로 다른 글 올려야 할 압박을 슬그머니 피해보겠습니다.
철학은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철학을 딱 듣는 순간 보통 나타나는 표정은 수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와 상당히 비슷하다. 그만큼 철학은 난해하고, 복잡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있어서 철학은 단순히 복잡함 이상의 것을 전달해 준다. 그 이유는 철학이 연역적 과정을 통해서 결론을 내리는 반면, 과학은 귀납적 방법을 통해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학과 상반되는 논리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철학은 과학이 무시하는 여러 부분을 간과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과학중에서도 대표적으로 귀납론을 사용하는 분야는 생물학 분야이다. 생물학의 진화론은 창조론과 항상 충돌하고, 생물학적 결과는 새로운 귀납론에 의해서 뒤집히기 일쑤이다. (반면 같은 귀납적 방법으로 결론을 내리는 물리학의 경우 연역적인 판단을 귀납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철학 자체에 대한 헛점의 노출보다는 그 방법론 자체를 배워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철학은 과학에게 과학이 간과한 부분을 언제나 잊지 않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보완책인 셈이다.

물리학이 절대 연역론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이다.
대표적으로 과학이 잘못 파악한 분야는 바로 살충제나 농약이다. 생산성 증대를 위해서 농약을 사용하였으나, 이제는 몸에 해로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약에 의존하지 않으면 작물을 망치기 마련이고, 그 악순환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인간이 단기간에 경험하기 힘든 일들에 대해서 귀납론을 사용하면 안되는 것을 생물학은 계속 간과하고 있다. 광우병은 아직 발병 과정조차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과학적으로 통제 가능하다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MSG에 대해서는 고작 분자생물학적 영향만을 알고 있을 뿐, 그 모든 영향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집합론은 훌륭한 논리론중 하나이다. 밴다이어그램 그리는법도 안배웠다고 할텐가?
특히 광우병의 경우에는 정치논리가 합쳐져서 지금까지 알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가정하여도 좋다고 말하는 미국식 귀납론에 지배당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물리에서는 이미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참이거나 거짓이거나 혹은 모른다라는 상태(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럼에도 모르는 것은 참이거나 거짓일테고 참이라고 가정을 한 상태에서 풀어 나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철학적 접근이 없으면 찾아내기 힘든 내용들(이에 대한 논쟁은 하이젠베르그 저서 '부분과 전체'에 잘 나온다)이다.

물리를 이해하는 방법. 이것도 철학적이지 않은가?
마찮가지로 MSG의 경우에도 신경 자극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 특히 장기간 노출되었을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생물학자들이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물론 저거 하나에 일생을 바칠 정도로 생물 분야가 할일이 없는 분야는 아니긴 하지만) 생물학에서 분자생물학적 방법을 최고로 친다면, 자극적 TV를 많이 보는 아이들에게 간질 증상이 발생하는 등은 TV를 탓하기 전에 아이들이 먹은 식품부터 분석해야 생물학자들 스스로가 모순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과학은 많은 부분을 가정하거나 간과하고 경험론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간과된 부분에 대한 의구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연역론적 접근인 철학이다.(의구심 없는 과학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과학을 살리고 있는 것 자체가 철학인 셈이다.) "전체는 모든 부분의 합보다 크다."(All is more than sum of its parts) 이 말은 과학자가 절대 잊어서는 안될 말이며, 철학이라는 학문은 그 자체가 아닌 과학에 의구심을 던져주고, 그 자리에 멈추지 않도록 계속적인 원동력을 제공하는 연료라고 할 수 밖에 없다
# by | 2009/06/09 07:54 | 바칼로레아를 풀어봅시다 | 트랙백(2)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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