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게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이번 용산 참사에서 희생된 돌아올수 없는 7분의 목숨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높히기 위해서 공부도 포기하고 키보드를 잡고 있습니다. 이 글의 아이디어는 제 이글루에 링크되어 있는 파리13구님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아서 쓰는 글이니만큼 우선 파리13구님께도 감사를 표합니다.

경찰, 이 단어는 동서고금을 막라하고 민중들의 적이 되어 왔었다. 프랑스의 작가 Victor Hugo 의 작품중 레미제라블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한국에는 장발장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 혁명 당시의 범죄자와 왕권강화를 위한 법치주의등이 많이 나와 있어서 지금 한국의 모습을 투영하기에는 매우 적합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내용은 다음 기회에 다룰 수 있으면 다루도록 하고 제목에 맞게 경찰에 대한 문제를 다루도록 해 보겠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주인공이라면, 자베르 경감은 보수와 공권력, 그리고 감정이 배제된 정말 말 그대로 엄격한 법의 집행자이다. 한국의 검찰이 자베르 경감과 같은 태도만 취해도 검찰의 신뢰도는 아마 지금의 몇백배 이상 올라갈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내에서는 코제트의 어머니가 보내준 돈을 갈취한 사람들이 장발장의 정보를 가르쳐 주었음에도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는 법의 심판을 주어주었다.) 그런 그가 극중 마지막에 프랑스 혁명중 자신을 용서하는 장발장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택한다. 이 죽음은 자베르의 잘못을 보여주는 것이 전혀 아닌, 바로 자베르의 신념인 법치주의와 원칙주의가 자신의 양심과 모순됨을 알게 되면서 그 엄청난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여 결국 자살이라는 행위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법치주의와 원칙주의가 인간을 위하지 않으면 결국 무엇을 위한것인지 알 수 없는, 자신의 존재마저도 부정되는 행위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번 용산 참사에서도 타협을 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원칙주의와 법치주의(솔찍히 위고와 자베르에게는 100배사죄를 해도 모자르지만 편의상 이리 쓰도록 하겠다.)를 보면서 과연 그 행위가 인간을 위한 행위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4대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재산권임에도, 재산권이 상위권리인 생명권을 무시하는 행위를 보면서, 경찰들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전쟁에서 미사일이 다른 병기에 비해서 훨씬 많은 돈이 소모됨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가, 게임을 하듯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 즉 사람을 죽인다는 자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현 정부도 마찮가지이다. 과연 이번에 용산에 진압명령을 내린 대통령을 비롯한 그 휘하 사람들은 사람들을 죽인다는 자각이 있었을까?

5.18때에도 그렇다. 당시 명령을 내린 사람들은 지금도 떵떵거리며 마르지않는 29만원을 갖은채 살고 있다.(난 전두환이라 한적 없다 오해다.) 하지만 당시 투입되었던 군인들은 정신적 질환까지 앓으며 고생을 하고 있다. 5.18은 민주화의 비극임과 동시에 당시 광주에 있었던 인간에게는 모두 영향을 미친 (군인이라도 지나칠 수 없는) 인도주의적 비극이기도 하다. (파리13구님의 블로그에는 광주시민민주화 혁명 당시의 진압군인이 승소판결이 있다. 어느정도 미심적긴 하지만 이 글과 관련이 적으니 넘기도록 하겠다.)

이렇듯 경찰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함에도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시민이 옳은 경찰의 편이 되 줄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경찰이 양심적 명령 거부를 하면 시민들이 도와줘야 하지만 오히려 양심을 이용해서 저 편하자라고 한다고 정부 편을 드는 사람들이 꼭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어떤 경찰이 자신을 쉽게 희생하며 명령 거부를 할 것인가? 그것도 명령체계가 매우 중요한 곳이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자리에서 다른것보다 중요한 경찰관이 양심을 지킬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경찰이 양심을 지켜준다면, 저런 무모한 진압명령이 내려와도 사회에서 자정작용을 거치면서 완화되고 대화를 열 수 있는 장이 생길 것이다. 시위에서 방패로 시민을 찍어 내리기 전에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지를 생각하려 할것이다. 경찰들의 양심과 시민들의 권리 두가지를 만족시킬수 있는 이 제안을 하는 바이며, 동감하는 분들은 이번 사건에 경찰과 시위대의 싸움으로 몰고가려는 자칭 보수들의 언행에 말려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에서 부터 시작하였으면 좋겠다. 경찰도 나의 친구, 친척, 동네 아저씨, 더 나아가서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인간이다.


Ps1. 왜 고전이 대단한 책들인지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는 기회였습니다. 이공계라 많은 교양서적을 읽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현암신서와, 씨알의 소리를 정독하며 휴가를 보내보고 싶습니다.

Ps2. 글은 왜 꼭 쓰고 올리면 아쉬울까요. 더 잘쓰고 싶은데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좀 막막합니다.

by 키시야스 | 2009/01/25 02:20 | 논쟁마당 | 트랙백 | 덧글(3)

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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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人鬪 at 2009/01/25 23:58
러시아 2월 혁명 당시 소비에트가 군을 민주화하고자 특단의 조치를 취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하급 병사들에게 장교의 명령에 불복할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군의 사기와 규율이 급격히 저하되자 1925년 새 규율 규정을 도입하여 장교의 명령권과 처벌권을 복구하였습니다. 공산당원들은 이를 제국의 악습으로 회귀하는 것이라 비난하였지만 결국 무시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군경 같은 꼴통 집단은 ―집단의 구성원 개개인이 꼴통이란 말은 아님― 은 본질상 자유, 민주 따위 이념과는 상극인가 봅니다. 솔직히 저런 규칙이 8년이나 간 게 신기합니다. 하지만, "민주를 폐지함으로써 민주를 수호한다"라.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이승만이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라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나 쓰일 법한 말입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경찰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1/26 00:15
생명에 대해서 그 생명마저 포기하라는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게 군대이기도 하니까요. 매우 애매한 행위이죠.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명령 불복종이 정말 시민을 위한 불복종이 되었다면 그 불복종에 대한 보호를 시민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5.18 진압 군인의 정신 질환과 시민 학살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막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민주화의 한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09/01/28 01:18
네.. 글 잘읽었습니다. 좀 늦었네요.. ^ ^
옛날에 군대에 있을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군 복무신조에 따라,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데,
그 명령이 양심의 자유와 충돌할때, 이 간극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 등등...

아무튼, 국가,조직에 얽매인 인간들이, 자신이 속한 그 국가나 조직의 근본가치가 충돌할때.
어떤식으로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인가의 문제는..
정말 사회적으로 신중히 논의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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